일에는 혼신을 기울이는 나경원, 북한문제 공로가 큰 그녀 는 중도개혁보수

일에는 혼신을 기울이는 나경원, 북한문제 공로가 큰 그녀는 중도개혁보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은(1963년 12월 전남 출신)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여,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당시 30세였다.

같은 학교 동기와 결혼하여 출산한 1남 1녀를 중, 딸 다운증후군이다. 그래서인지 나경원은 약자문제와 인권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지녔고, 북한인권과 비핵화에 대해, 또한 경제협력에 대해 세계적으로 활동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나경원이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02년 16대 대선 기간 중 이회창의 요청에 응하면서이며, 이회창 패배 후 다시 변호사 활동을 했었다. 그러나 2003년 7월 한나라당 운영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7대 총선에서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04년 3월에 비례대표에 당선된 직후, 중도개혁보수파인 ‘푸른정책연구모임’에 참여했고, 정무위에 배정되었다.

출산 후 인권에 대해 남다른 관심

같은 학교 동기와 결혼하여 출산한 1남 1녀를 중, 딸 다운증후군이다. 그래서인지 나경원은 약자문제와 인권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지녔고, 북한인권과 비핵화에 대해, 또한 경제협력에 대해 세계적으로 활동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나경원이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02년 16대 대선 기간 중 이회창의 요청에 응하면서이며, 이회창 패배 후 다시 변호사 활동을 했었다. 그러나 2003년 7월 한나라당 운영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7대 총선에서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04년 3월에 비례대표에 당선된 직후, 중도개혁보수파인 ‘푸른정책연구모임’에 참여했고, 정무위에 배정되었다.

딸이 다운증후군이어서 차별 받은 바 있는 나경원은 장애아동 부모와 전문가들의 연구모임, We Can을 만들어 회장을 역임했고, 한나라당에서도 장애인복지특위 위원장을 지내면서 장애인 처우개선과 ‘복지 및 인권 분야’에서 활약한 바 있다.

나경원은 17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내으며, 장애인이 후견인 도움으로 재산관리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인 ‘장애성년 후견법안’을 만들고 통과시켜 주목받았다. 이외 5건의 대체입법을 통과시키고 10건의 장애인 특수교육 법안을 공동발의 했다.

바름을 추구하는 나경원

17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에는, 당시 여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시절, 서울시가 수도이전집회를 위한 관제데모를 위해 5억원을 사용했다고 했는데, 그 의혹이 허위라고 주장했다.

2005년 1월 원내부대표로, 2월에는 당 윤리위원으로 위촉되었고, 한나라당의 공보부 대표로 활동하면서 검찰의 X파일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발표했다.

오세훈 후보 서울시장 캠프에 합류했고, 당시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이 나경원과 유기준을 한나라당 공동대변인으로 임명했다.이 당시,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 이중보고를 지적했고, 노무현 대통령 조카가 사행도박사업 ‘바다이야기’와의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관련된 언급과 관련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입만 열면 설화를 일으키는 개구즉화”라는 논평을 했다.

2008년 3월 서울특별시 중구로 공천 받아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한나라당의 제6정조위원장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의원을 맡았다.

그 해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차를 불심검문 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공직자의 종교 차별금지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을 제출했다.

2008년 11월 3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 개정안은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다.

2009년 나경원은 1월 22일 “미디어 관련법은 1월 여야 합의정신과 국회법에 따라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문방위의 위원장 고흥길의 2월 25일 기습상정으로 그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 경선에 도전하였으나 오세훈후보에 패배하고, 대신 오세훈 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하여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오세훈이 시장직에서 물러나자, 나경원은 서우특별시장 보궐 선거에 출마했으나, 박원순에게 패배하고 낙선했다.

2014년 7월, 시장에 출마하는 정몽준 의원의 공석에 출마해서 노회찬을 꺾고 당선되었다. 나경원은 여성으로 최초의 3선의원이 되었으며, 2015년 외교통일분야에서도 최초의 여성 상임위원이 되었다.

애정을 쏟은 스페셜올림픽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19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후 , 스페셜올림픽에 혼신을 기울였다.

2013은 평창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만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혼신을 기울인 결과, 세계에서 30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이 모여들었고 17만 명의 관중이라는 성황을 이루었다.

스페셜올림픽은 승부를 건 경쟁보다는 메달 못 딴 친구에게 자신의 메달을 선물하고, 뒤처진 친구를 위해 결승선 앞에서 기다려 주는 지적장애 선수들의 이야기가 보여지는 올림픽이었다. 이후 나경원은 “무릎을 굽히면 사랑이 보인다”라는 제목으로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북한 인권에 심중을 기울여

2015년 2월, 새누리당에서 여성으로 최초로 국회외교통일 위원장이 되었다. 이 때 나 의원은 “우리 외교가 녹록치 않다”며, 정부와 국회가 소통과 협업을 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통일과 북한인권문제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나 위원장은 당시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사건이나, 독도문제, 일본교과서 문제 등 강제징용이나 주한미군 탄저균 배달사고, 프랑스 테러까지 많은 문제들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나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10년동안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의 통과를 위해 야당의 합의를 제촉했다. 외교통일위원장이었던 나경원은 11월 30일 전체회의를 열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해서, 주목받았다.

한편,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것에 대해 나경원은 반대의견을 확실히 했다. 나경원은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조선인 강제 징용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규탄 결의안’을 의결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의회에 서한을 발송했으며, 등재 저지에 협조를 요구했다.

유네스코 사무총장 이라나 보코바를 만나고, 멕시코를 방문하는 등,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면서 북한문제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핵폐기와 북한개방을 원해던 나경원

나경원 의원은 보수우파인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임원이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일본의 무리한 행위에 반대하고, 북한 인권문제를 중시 다루었으며, 2016년에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규탄 및 핵폐기 촉구 결의안’을 제안하고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를 만났을 때는 북한개혁개방을 위해 대북기술원조와 경제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대북관계와 통일에 대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던 나경원으로써, 문재인의 판문점 선언이 있은 후 ”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27일 남북 양 정상이 발표한 종전선언과 비핵화 의지를 담은 판문점 선언에 대해 “북한에 모두 내주고 퍼주면서 북한으로부터는 실질적으로 얻은 것이 없는 선언”이라고 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의원은, “북한이 보유한 과거의 핵과 현재의 핵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며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4월 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발표를 기정사실로 해준 셈”이라고 지적하면서, 10.4 선언과 맞물려 얻은 것 없이 퍼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중지 등 우리만 무장 해제하는 조치들에 대 “서해평화수역 역시 지난 10.4. 선언과 달리 북방한계선 일대라는 표현을 포함했지만,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에서 결국 우리 영토만 내주는 꼴이 안될지 우려가 깊다”고 했다.

이어 “보수 정권 9년 동안 일관되게 대북제재를 집행한 결과 어쩔 수 없이 두 손 들고 나온 김정은의 양손에 선물 보따리는 물론 무기까지 들려 보내주는 셈”이라고 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