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수수밭 한인 독립자금 임시정부 만들어

임시정부를 가능케 한 미주 한인들 피땀 어린 독립자금

[8.15 특집] 임시정부를 가능케 한 미주 한인들 :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대한민국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있었지만, 세계 전역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한인들이 자금을 모아서 보낸 독립자금이 없었으면 활동은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식민지 출신이라는 설움 속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며 피와 땀, 눈물이 범벅이 된 돈을 모아 지속적으로 엄청난 거금을 독립운동가들에게 보냈다. 물론 국내에서도 양반들이나 상인들 혹은 지주들이 일본인들 몰래 자금을 보내곤 했다.

임시정부를 가능케 한 미주 한인들
사탕수수 밭의 한인들, 고된 노동으로 독립자금 모았다

자금이 없으면 독립운동가들은 생활고로 인해 독립 활동에 제약을 받을 것이고 아예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 흩어져 고된 노동을 하는 한인들이 자금을 모았다.

당시는 한국인들이 외국에 갈 때, 외국인의 도움을 받아 가거나 자금을 지니고 가는 경우는 매우 혜택 받은 일부였고, 대부분은 무일푼으로 도주하거나 노예처럼 팔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그들이 외국에서 받았던 대우는 매우 열악한 상태였고, 남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으며 남들이 꺼려하는 고된 일을 해야 했다.

인종차별도 심하던 당시로써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겪으며 자금을 모았을 지 상상이 간다. 그러나 불굴의 투지로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솔선수범해서 열심히 해서 비교적 돈을 많이 벌기도 했다.

임시정부를 가능케 한 미주 한인들
하와이 사탕수수의 한인들, 피땀 어린 돈으로 독립자금 지원

그들은 그렇게 고된 노동으로 번 돈을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모조리 사용할 수 없었다. 국가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독립이라는 절박함이 피로 범벅이 된 그 돈의 많은 액수를 떼서 꾸준히 독립운동가들에게 보내야 했을 것이다.

노예와 다름없는 하와이 사탕수수 한인들의 피 묻은 독립자금

한인들의 독립자금 모금에 대한 눈물어린 노력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며, 멀리 타향인 미국이나 하와이에서 그 열정은 남달랐다.

1902년 12월 22일, 121명의 한국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향했다. 항해 중 20여명이 사망하고 남은 사람들은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그 후 몇 차례를 거쳐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주한다.

이들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도산 안창호 선생을 중심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친목회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자금, 애국금, 혈성금, 국민부담금, 독립금 등 각종 이름으로 모아진 그들의 자금은 상해임시정부로 송금되었고 독립운동에 이바지 했다.

노예처럼 일하면서 번 돈이라고 하기에는 실로 거액에 해당하는 300만 달러가 넘는다. 요즘 돈으로 수억달러에 달하는 금액이었으며, 당시 미주한인동포들의 독립에 대한 강한 염원이 아니었으면 가능하지 않은 금액이었다.

임시정부를 가능케 한 미주 한인들
고된 사탕수수 밭 일을 하면서도 나라를 위해 독립자금 모금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동지회, 비행사양성조직, 재미한족인연합회, 박용만군사학교, 대한여자애국단, 상해임시정부참여 등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이승만의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지지했고, 박용만과 노백린의 군사훈련을 통한 독립무력투쟁과 장인환과 전명운의 의열투쟁 독립운동, 안창호 교육 및 혁명노선 표명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 했다.

이승만, 안창호, 임병직, 서재필, 장인환, 전명운, 노백린, 박용만 등 수백명의 독립운동가들이 국가보훈처에 등록이 되었으며, 그 외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미주한인들의 돈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로 보내졌고, 중국에도 보내졌다. 이봉창 의사 거사 자금도 하와이로부터 오는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이봉창 의사 거사와 이승만 제네바 호소, 하와이 자금으로

임시정부를 가능케 한 미주 한인들
임시정부를 가능케 한 미주 한인들

하와이 교민들은 “하와이가 8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으니 이곳에서 번 돈을 조선 팔도를 살리는 데 쓰자”며 후원금 모으는데 남달른 애정을 가졌다. 그들의 후원금은 항일민족주의 단체들을 통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로도 보내졌고, 무장투쟁부터 비폭력운동까지 많은 분야의 독립운동에 쓰였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1932년 이봉창 의사의 수류탄 투척 의거는 “하와이 교민들이 보내준 돈이 거사를 치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기록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33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고 한국의 독립을 주장할 때도 하와이 교민들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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