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호 판타지 정중부

반사회적 장대호의 판타지 정중부, 장씨와 반대

지난 8일 오전 서울 구로구 모텔에서 투숙객 A씨(32)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시신을 토막내서 한강에 유기한, 이른바 ‘한강 몸통 시신’사건의 자수자 장대호(38)는 의아할 정도로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장대호 판타지 정중부

장대호는 보강조사 당시 경찰서에서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이번 사건은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이다.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죽인 사건”이라고 말해서 경찰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장대호는 또한 “유치장에서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이 죽을 짓을 했다”라고 말했으며, 반성하냐는 말에도 “반성하지 않고 있고 유족에게도 전혀 미안하지 않다”고 했다.

호송을 맡은 수사진이 말을 막으려 하자 “잠깐만 잠깐만, 왜 말을 못하게 하느냐”고 항의도 했다. 장대호는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음 생애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는 말을 퍼부었다.

그는 “많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이 죽을 짓을 했다”며, “고려시대 때 김부식 아들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중부는 그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가 무신정변을 일으킨 당일 잡아 죽였습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장난으로 수염을 태운 일이지만 당사자한테는…”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바람에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장대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장대호는 자신을 정중부와 동일시 하면서 정당화 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장대호는 정중부와는 여러 면에서 반대의 성향이다. 정중부는 장신의 기골이 장대하고 하얀 얼굴에 수려한 외모를 지녔지만, 장대호는 키가 작은 단신에 얼굴 색도 거무스름하다. 정중부가 무신의 난을 일으키기까지는 수십년간 참았던 분노가 있었지만, 장대호는 하루 전에 처음 본 투숙객에게 무엇인가에 분노해서 즉흥적인 살인을 했다.

그러나 장대호는 마치 자신이 합당한 일을 한 것처럼 스스로 인식하며 정중부와 일치시키면서 아주 당당하게 심지어 멋스러워 보이기 위한 제스추어까지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장대호에 대해 “준법의식이 없고 책임감이 부족해 보인다. 극도의 반사회적인 태도”를 지녔다고 분석했다. 그는 장대호가 “약자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했지만, 별다른 전과가 없는 것을 보아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상황 판단력이 떨어지는 지능이 높지 않은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한동안 내심 자신을 질책하는 마음이 들었어도 스스로 벌인 사건이 너무 엄청나서 합리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 것일까? 현실감과 너무 멀어져 보이는 그는 자신의 영웅이었던 정중부의 환타지에 빠져 자신마저 굳게 믿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지은 죄에 대한 처벌을 내리기 전에 정신병원으로 먼저 보내져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위풍당당 정중부의 원한을 산 문신들

정중부는 해주 출신의 7척이 넘는 거구의 미남, 용모가 우람했으며 눈동자는 네모졌고 이마가 넓었으며, 얼굴 빛은 백옥 같고 수염이 아름다워서 위풍당당한 외모가 출세에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정중부는 공학군(控鶴軍)이라는, 고려 시대 임금의 조회나 연회 행차시 동원되었던 국왕 호위 부대였다. 인종(재위 1122년~1146년) 초급 장교에 해당하는 견룡대정(牽龍隊正)이 되는데, 이때 정중부에게 평생 원한을 품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섣달 그믐 역귀를 쫓는 의식에서, 신하들이 장기자랑을 하고 있을 때, 왕의 측근들이 함께 춤을 추며 놀다가,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를 만만히 보고, “무신 따위가 저런 멋진 수염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촛불로 수염을 태워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화가 난 정중부는 김돈중을 휘어쥐고 두들겨 팼다. 김돈중의 아버지였던 김부식은 아들이 두들겨맞은 것을 알고는 가문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왕에게 정중부를 매질하라고 주장한다.

당시 인종은 김부식의 체면을 생각해서 허락하기는 했으나, 정중부가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정중부와 김부식 부자는 원한관계가 된다.

1147년에는 어사대가 정중부를 탄핵하라는 요청을 했으나 의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정중부가 문신들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는 사건들이 연속해서 일어난 것이다.

인종과 의종 모두에게 총애를 받던 정중부는 승진을 거듭해서 무신정변이 일어난 1170년 무신 최고직인 응양군(鷹揚軍) 상장군(上將軍)에 이르렀다.

무신들은 지속해서 자신들을 무시하는 문신들에 대한 불만이 증가던 중, 좌부승선 임종식과 기거주 한뢰가 무관들을 업신여기면서 불만은 고조된다.

의종이 주색에 빠지고 놀러다니기를 좋아했는데, 문신들의 세력에 눌려 현실도피 했다는 해석도 있다. 1166년에는 왕이 성수원(聖壽院)에서 각예와 함께 연회를 베풀며 끝없이 시를 짓고 즐기는 사이, 정중부를 포함한 호위군이었던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피곤한 호위를 서게됐다. 이에 무신들은 불만이 폭발해 군사를 일으킬 생각을 품게 된다.

1170년 8월에는 왕이 연복정에서 출발에 흥왕사에 놀러갔을 때, 결국 무신들이 폭발했다. 정중부가 측근은 “다음에 왕이 연복정에서 궁으로 돌아가거든 그냥 참고, 또 보현원(普賢院)으로 가면 군사를 일으키자”고 했다.

다음 날 의종이 보현원으로 출발하려다가, 무신들의 불만을 느꼈는지, 오문(五門)에서 멈추고 씨름 대회를 열어 무신들끼리 즐기게 하고 상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나이 든 대장군 이소응이 수박 경기에 참여했다가 지쳐서 빠져나왔는데, 한뢰가 이소응을 조롱하며 그의 뺨을 때렸다. 이때 왕과 문신들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으며 임종식(林宗植)과 이복기(李福基) 등도 이소응을 모욕했다.

정중부는 즉시 분노를 터뜨리며 한뢰에게 “이소응은 3품 벼슬을 지내고 있는데 너 따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라고 외쳤다. 나이 든 무신이 백주 대낮에 젊은 문신에게 맞았으니 무신들에게 과도한 모욕이었다.

정중부의 난, 무신정변

날이 저물고 왕의 일행이 보현원으로 갈때, 이고와 이의방이 먼저 가서 순검군을 소집시키고 나서, 왕은 들어가고 문신들만 있을때 무신들이 불시에 임종식과 이복기를 죽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뢰는 그걸 보고 왕의 어상 밑에 숨기도 하고 왕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지만, 이고의 칼에 맞아 죽었다.

이후 무신들은 개성에 가서 문신 수십여 명을 학살하고 그들의 집까지도 허물었다.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은 도망쳤지만 이후 시종의 밀고로 인해 자신의 동생과 함께 잡혀 죽었다고 전해진다.

의종은 정중부에게 그만하라고 만류했지만, 정중부는 건성으로 수긍할 뿐 계속 문신들을 죽였다. 이것이 ‘정중부의 난’이라 불리는 ‘무신의 난’이다.

이후 정중부는 의종을 폐위하고, 태자를 유배보내고, 태손을 살해한 뒤, 의종의 동생이었던 익양공 왕호를 왕으로 옹립했다. 1172년에 김보당의 난이 발생하고 장순석, 유인준 등이 거제도의 의종을 데려와 옹립하려하자, 군사를 김보당의 난을 진압한다.

당시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조위총이 군사를 일으켰으나 정중부가 반란을 잠재우는 과정에서 이의방도 살해하고 최고의 권력을 쥐게 되고 최고실세인 문하시중에 오른다.

이후 정권 안정을 위해 일시적으로 문신 우대 정책을 펴 같은 무신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후 역적으로 몰려 단죄됨으로써 그의 가계나 족보도 모두 사라진다.

장대호 판타지 정중부 장대호 판타지 정중부

댓글 남기기